본문 바로가기

병가는 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을까

📑 목차

    1. 병가는 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을까
    2. 근로기준법이 다루는 ‘기본 단위’
    3. 병가의 성격: 예외적 상황
    4. 연차유급휴가와 병가의 차이
    5. 병가를 법에 두지 않았을 때의 효과
    6. 병가에 대해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
    7. 병가 논의가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
    8. 최근 병가를 둘러싼 인식 변화
    9. 병가를 이해할 때 필요한 관점

    병가는 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을까

    — ‘아파서 쉬는 시간’을 법이 직접 규정하지 않은 이유

    직장 생활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몸이 아픈 상태로 출근을 고민해 본다. 하지만 연차유급휴가나 공휴일과 달리, 병가는 근로기준법 조문에서 명확하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병가는 법적 권리가 아닌가”, “아프면 무조건 연차를 써야 하나”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병가는 정말로 법의 보호 대상이 아닌 걸까.

    병가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이유는 단순한 입법 누락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근로기준법이 다루는 영역과 한계를 의도적으로 구분한 결과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병가가 법에 직접 규정되지 않은 이유와, 그로 인해 형성된 제도적 구조를 살펴본다.

     

    병가는 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을까

     


    근로기준법이 다루는 ‘기본 단위’

    근로기준법은 이름 그대로 ‘근로의 기준’을 정하는 법이다. 이 법이 집중하는 영역은 근로시간, 휴일, 임금처럼 근로관계의 공통 최소 기준이다. 모든 사업장, 모든 근로 형태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근로기준법은 개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사유보다는, 일반적이고 반복 가능한 근로 조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병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법의 직접 규율 대상에서 벗어난다.


    근로기준법에서 병가의 성격: 예외적 상황

    병가는 근로자의 개인적 건강 상태라는 개별적이고 비정형적인 사유에서 발생한다. 근로시간이나 연차처럼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발생하는 권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생 여부와 기간이 크게 달라진다.

    근로기준법이 병가를 직접 규정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개별성을 일률적인 기준으로 묶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이 병가를 명시하려면, 언제부터 병가로 인정할지, 기간은 얼마로 할지, 임금은 어떻게 처리할지 등 복잡한 기준을 함께 정해야 한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지향하는 ‘보편적 최소 기준’과는 성격이 다르다.


    연차유급휴가와 병가의 차이

    연차유급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다. 이는 연차가 근로자의 회복을 정기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연차는 아프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고, 아플 때도 사용할 수 있다. 즉, 연차는 특정 사유에 종속되지 않는 보편적 휴식권이다.

    반면 병가는 특정 사유, 즉 질병이나 부상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발생한다. 이 차이 때문에 법은 연차를 기본 장치로 두고, 병가를 별도의 제도로 직접 규정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다. 결과적으로 연차는 법정 휴가가 되었고, 병가는 사업장별 제도로 남게 되었다.


    병가를 법에 두지 않았을 때의 효과

    병가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하지 않은 선택은 한편으로는 제도적 공백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사업장마다 업종, 인력 구조, 업무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병가를 일률적으로 적용할 경우 현실과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병가는 취업규칙, 단체협약, 내부 규정 등을 통해 자율적으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다. 유급 병가인지, 무급 병가인지, 사용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조직마다 다르게 정해진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세부 설계를 현장에 맡긴 대표적인 영역이다.


    병가에 대해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안의 원인

    병가가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많은 직장인들에게 불안으로 다가온다. “아프면 보호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라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병가 제도가 전혀 보호되지 않는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근로기준법이 병가를 직접 규정하지 않았더라도, 근로관계 전반을 보호하는 다른 법과 제도들이 함께 작동한다. 다만 이 보호는 연차처럼 자동 발생하는 구조가 아니라, 개별 제도들의 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점이 병가를 둘러싼 체감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병가 논의가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

    병가 문제가 반복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는, 현대 근무 환경에서 건강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 근로, 업무 스트레스, 감염병 확산 등으로 인해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은 강해졌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단일한 법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간극 속에서 병가는 연차, 휴직, 무급 휴가 등 여러 제도 사이를 오가며 처리된다. 이러한 복합 구조가 병가를 더욱 불명확하게 느끼게 만든다.


    최근 병가를 둘러싼 인식 변화

    최근에는 병가를 단순한 개인 편의가 아니라, 조직의 지속 가능성과 공공 안전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감염병 상황을 겪으면서, 아픈 근로자가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구조의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었다.

    이로 인해 일부 사업장에서는 법적 의무와 별도로 병가 제도를 정비하거나, 유급 병가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근로기준법의 직접 규율이 없더라도,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제도가 보완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병가를 이해할 때 필요한 관점

    병가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권리가 없다”로 해석하기보다는, 법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영역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근로기준법은 모든 상황을 하나의 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일부 영역은 다른 제도와 자율 규칙에 맡긴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병가를 둘러싼 혼란도 보다 입체적으로 보인다. 병가는 법의 부재가 아니라, 법의 역할 분담 속에 위치한 제도다.


    정리하며

    병가가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지 않은 이유는, 병가가 근로관계의 보편적 기준이라기보다 개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예외적 사유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연차유급휴가라는 보편적 휴식 장치를 두고, 병가에 대해서는 사업장별 자율 설계를 허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제도적 공백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근무 환경을 포용하기 위한 유연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병가를 이해하는 일은 근로기준법이 무엇을 직접 규정하고, 무엇을 남겨두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며, 그 경계에서 법의 성격과 한계가 함께 드러난다.